건축/건축자재

한옥의 역사, 재료, 지붕형태, 주거형태

way 2021. 5. 26. 22:35

1. 한옥의 역사.

한옥은 석기시대 막집, 움집 같은 수혈식 구조에서 시작하였으며, 삼국 시대 가옥은 여러 가지 토기나 벽화 등 당시 가옥 형태를 유추 가능한 유물들이 발견되고 있는데 대부분의 평민들이 살던 곳은 단칸으로 구성된 집이긴 하지만 여러 개의 기둥을 세워지었기 때문에 비교적 넓은, 현대인 기준에서 가옥이라 칭할만한 형태로 발전하게 됐다. 고구려같이 추운 북부는 열 손실을 방지하기 위해 창문과 문을 작게 튼 반면 남부지방에서는 북부보다 개방적인 형태를 뗬다. 한편 동 시기에  중국에서 기와와 단청이 전래되어 왕궁과 비교해 다르지 않은 상류층의 가옥들은 오늘날 흔하게 생각하는 기와로 이루어진 화려한 가옥에서 주거 생활을 누렸다. 신라와 고려 시대에는 귀족 문화로 이루어진 융성과 한께 상당히 사치스러운 주택을 짓고 살았다. 특히 신라 말기에는 황동 등 금속 부착물로 집을 장식했고, 심지어 금입택이라 하여 황금으로 집을 감싸버리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고려 시대에는 화려한 귀족 문화가 고점에 달하여 고려청자로 지붕을 올리는 것이 유행했으며, 이 형태는 조선시대에도 그대로 전래됐는데, 경복궁 복원 사업을 위하여 궁터에서 발굴 작업을 통해 다량의 청와가 발견돼 실록의 내용 그대로 경복궁의 건물 다수가 청와 건물이었음을 밝혀냈다. 참고로 궁궐들 중 현시대에 남아있는 청와건물은 창덕궁 선정전이 유일하게 남아있다.

 

2. 한옥의 재료

지역이나 재산, 지위에 따라 차별이 있지만 주로 나무, 흙, 돌, 짚 등을 이용해 제작한다. 나무와 짚으로 뼈대를 제작하고 황토를 발라 벽으로 만든 후에 어느 정도 굳으면, 한지를 붙여서 마무리한다. 돌의 경우에는 밑돌로 사용하며, 온돌을 내장시키고 주방과 연결하기 때문에 주방은 방보다는 낮은 곳으로 위치시켜 남는 지붕 칸에 다락방을 만들어 썼다. 지붕도 위의 재료들 중 하나를 선택해서 쌓아 놓는다. 부잣집의 경우, 기와로 지붕을 덮었다.

 

3. 한옥의 지붕형태

한옥은 조선왕조의 신분제도 영향을 받아서 지붕의 형태가 각각 다르게 보이기도 하였는데, 왕족이나 양반 계급은 장식적이고 화려하게 보이는 기와지붕을 사용하였으며, 일반 평민 계급층의 경우는 짚으로 이은 초가지붕을 사용하였다.

기와의 수명은 10년 이상이고 초가의 경우는 2~3년까지가 최대치이다. 기나긴 장마철에 비가 아주 조금씩 새는 것이 다반사이기 때문에 초가 한옥과 기와 한옥의 선택은 재력의 차이로 선택지가 나뉜다. 초가 한옥에서는 휘고 짧은 길이의 나무를 택하기에 지붕 높이가 낮다. 기와한옥의 경우는 굵고 곧게 뻗은 나무를 구해 짓기 때문에 지붕이 상대적으로 높아 단열은 초가 한옥이 우수한 편이며, 근본적으로 참나무에 비해서 열량이 높은 소나무를 장작으로 사용했던 한반도에서 구들에 장작으로 난방을 하게 되면 등이 뜨거울 정도로 온도가 올라가기 때문에 완벽한 단열보다는 뜨거움을 적당히 줄여줄 위풍을 허용하고, 필요하다.

 

4. 한옥의 주거 형태

한옥은 신분제도가 짙게 형성됐던 조선왕조 때 이르러서 계급별로 주택 선호방식이나, 건축방법이 다르게 나타나기도 하는데, 왕족이나 상류층 양반의 경우 신분, 남녀, 장유를 구분하여 공간을 형성하고 공간을 상중하로 나뉘었는데, 윗 공간은 안채와 사랑채가 속하여서 남녀 양반들이 주로 사용했던 곳이며, 중간 공강은 중문 간 행랑채로 양반들을 보좌하는 청지기나 서기, 그리고 집사가 사용했으며, 아랫 공간은 대문 주변에 위치해 있는 행랑채로 보통 양반댁 머슴과 노비들이 사용했던 점을 보아서 사람뿐만 아니라 한옥의 구조에 있어서도 신분제도가 아주 큰 영향을 주었음을 볼 수 있다.